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Paul Volcker) 의장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금리를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 경제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GDP 성장률은 2분기에 3% 중후반 (애틀란타 연은 GDPNOW 기준)이나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업률은 4%도 되지 않는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소비도 탄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워낙 돋보이다 보니 미국 예외주의(Exceptionalism)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데, 긴축적인 통화정책이 결국 시차를 두고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란 것이다. 지금 당장이야 금리를 올려둔 영향이 크게 나타나지 않겠지만 결국 높아진 금리가 경제에 악영향을 주어 미국 예외주의도 막을 내리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과연 20년만에 우리나라 제 1의 수출국으로 올라선 미국, 과연 미국 경제는 올해 하반기에도 탄탄한 모습을 이어갈 수 있을까?
1. 고용시장
하반기 미국 고용 시장은 안정적인 모습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여전히 코로나 19 이후 발생한 고용 시장의 타이트함이 모두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고용 시장의 타이트함이란 실업자 1인 당 구인 공고가 몇 개나 나와 있는지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의 고용 시장은 타이트함과 거리가 멀었는데, 실업자가 구인 공고보다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실업자간의 경쟁이 발생하게 되는데, 기업은 임금 상승을 억제하면서도 필요한 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다 만약 경기가 나빠지면 그 즉시 해고를 해버렸다. 평상시에도 일자리보다 일할 사람이 넘쳐났으니 좀 어려워지면 해고했다가, 이후 상황이 좀 나아지면 다시 고용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고용 상황에서는 경기가 조금만 나빠져도 해고가 급증하여 실업률이 급상승할 수 있다. 앞서 미국에서는 실업의 급증이 소비 충격, 그리고 침체로 이어진다고 말했는데, 고용 시장이 느슨하면 이처럼 언제 갑자기 침체로 빠질지에 대해 지속적인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미국은 정반대이다. 실업자 1인당 구인 공고가 1.3~1.4개 열려있다. 즉, 과거와 반대로 실업자보다 일자리가 더 많은 상황인 것이다. 놀라운 건 이게 그나마 나아진 상황이란 것이다. 한창 미국 경기가 뜨거웠던 2022년도 상반기에는 이 비율이 2.0까지 치솟았다. 즉, 실업자가 일자리 두 개를 두고 골라서 갔던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경기 둔화가 나타나면 갑작스러운 실업률 상승이 발생하지 않는다. 실업자와 구인 공고간에 비율이 깨져있다는 점이 일종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Source : BLS, Fred)
2. 초과 저축
미국 경제가 버틸 수 있는 또 하나의 완충지대가 있는데 바로 초과 저축이다. 코로나 19 이후 미국 정부는 그야말로 돈을 살포했는데, 그 덕분에 저축률이 기형적으로 올라갔고 이것을 초과 저축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초과 저축을 미국인들이 이미 다 썼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소비하기 좋아하는 미국인들이 그 많던 초과 저축을 다 써버렸다는 것인데, 이 점은 계산법에 따라 차이가 난다. 오늘은 그 부분을 짚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초과 저축 계산법은 다음과 같다. 코로나 이전 4년간 나타난 저축률의 상승추이가 미국에서 추후에도 계속해서 나타날 저축률 상승 수준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코로나 이후 기준 저축률로 삼는다. 이제 실제로 나타난 저축률과 이 기준 저축률을 비교한다. 그렇게 해서 실제 저축이 기준 저축보다 높으면 초과 저축에 플러스를, 낮으면 초과 저축에 마이너스를 해준다.
이를 변형해 본 것이 바로 유지형인데, 기준 저축률로 코로나 이전 기간의 평균인 6.2%를 사용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가정해서 초과 저축을 계산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여전히 초과 저축이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Source : BLS, Fred)
물론 이 초과 저축이란 개념 자체가 코로나 19 이후 새롭게 가정해서 만든 것이기에 완벽하게 계산해 낼 순 없다. 다만 잘 알려진 방법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으며, 생각보다 미국 가계가 아직 여유가 남아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초과 저축은 고용 시장에 여전히 남아있는 완충지대와 마찬가지로 미국 소비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게 될 것이다.
3. 디스인플레이션
2024년 1분기, 특히 1월에 물가가 예상대비 높게 나오면서 물가가 재상승하는 것 아닌지 우려를 낳았는데, 이는 연준의 금리 인하 스케줄에도 영향을 주었다. 다만 물가를 나타내는 주요 선행지표를 볼 때 추가적인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이 둔화되는 것)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음은 근원 CPI와 구인 공고의 추이이다. 근원 CPI에는 서비스업이 포함되어 있고, 이는 임금 상승률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분야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용 시장의 강도가 근원 물가의 선행지표격 역할을 한다. 다음은 구인 공고가 근원 물가를 6개월 선행하는 것으로 가정하여 그려본 그래프이다. 기울기가 초기처럼 급격하진 않지만 추가적인 안정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Source : BLS, Fred)
주거비의 경우 집값에 크게 후행해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임대계약의 특성상 새롭게 맺은 렌트비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순차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향후 추가적인 주거비 상승률 하락이 예상된다. 최근 집값 상승률이 다시 올라왔으나 이는 코로나 이전 과거 평균 수준의 상승 정도이다. 연준에게 필요한 것은 디플레이션이 아니라 디스인플레이션이다.
미국 예외주의에서 확산으로
미국이 이처럼 잘 받쳐주는 가운데 이제 그 온기가 글로벌로 확산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드디어 각국이 자신의 처지에 맞는 통화정책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에는 미국이 워낙 가파른 속도로 금리를 올려나갔기에 다른 나라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긴축적인 정책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미국은 언제 금리를 내릴지에 초점을 맞추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미국이 이 같은 국면에 접어들고 나면 이제 다른 나라들은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각국이 자신의 상황에 따라 통화정책을 완화로 되돌리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재고 조절이 충분히 이뤄졌다는 점도 향후 글로벌로의 경기 확산을 기대하는 요소이다. 코로나 19 이후 경기가 생각보다 좋아지자 기업들은 맹렬히 신규 주문을 냈다. 하지만 경기가 갑자기 꺾였고, 이렇게 낸 주문들은 모두 과잉 재고로 남아버렸다. 이후 약 2년간 미국 기업들은 악성 재고를 떨어내기 위한 노력을 무던히 하였고, 그 결과 물가를 고려한 실질 재고 기준으로 볼 때 드디어 코로나 19 이전의 재고 추세선 아래로 재고가 내려가기에 이르렀다. 즉, 이제 과잉 재고 조절은 종료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수출의 추가 반등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으로 품목별로도 보았을 때 그 동안 특정 카테고리에 집중되어있던 수출 반등에서 다른 카테고리로의 확산이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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