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박스’, ‘택배상자’, 혹은 ‘골판지박스’.. 

불리는 용어가 다양하다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우리 생활에 밀접하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골판지박스는 물류와 유통의 핵심 포장재이기도 하며, 제조업에서는 다수 제품의 단위 포장 용도로 압도적인 사용량과 빈도를 보여줍니다. ‘박스’는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한데요, 이 박스의 산업 구조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역동적인 역학 관계로 움직입니다. 

오늘은 골판지 업계의 생리에 대해 담백하게 써보겠습니다.

1. 골판지 산업의 3단계 구조

골판지박스는 크게 제지사 > 판지사 > 지함사를 거치는 세 가지 생산 단계를 가집니다.

① 제지사

골판지의 원료인 ‘원지’를 생산하는 업체입니다. 원지는 주로 국내에서 수급한 고지(폐지)를 주원료로 생산합니다. 실제 골판지박스를 보시면 종이가 3겹으로 되어있을 텐데요.(5겹짜리, 7겹짜리도 있지만 이해를 위해 3겹으로 예를 들어 설명함), 이 3장을 낱매로 각각 만든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② 판지사

제지사로부터 원지를 받아 ‘골판지’를 생산하는 업체입니다. 낱매 3장 원지를 받아 1장으로 합친다고 이해하시면 되는데요, 표면의 종이를 ‘표면지’, 가운데 물결모양 종이를 ‘골심지’, 상자 안쪽의 종이를 ‘내면지’라고 합니다. 이 공정에서 사용하는 설비를 ‘골게이터’라고 합니다.

③ 지함사

판지사로부터 골판지를 받아 최종적으로 ‘박스’를 생산하는 업체입니다. 인쇄, 절단, 접착 공정을 통해 고객사의 제함기(박스를 자동으로 접어주는 기계)에서 쓸 수 있도록 포장하여 입고하는 역할까지 하게 되죠. 바로 지함사가 구매 담당자인 여러분들이 거래하게 되는 업체입니다.

이제 이 산업 구조에서 벌어지는 힘겨루기를 살펴보겠습니다.

2. 대형 지함사들의 이익 확대 전략

사실, 골판지 시장에는 대형 지함사가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박스 구매 담당자라면 이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① 고지가 하락 시, 원지가와 판지가를 동결

고지가(폐지가) 하락은 제지사의 원재료 원가 절감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고지가가 내려가더라도 원지가 혹은 판지가의 판매 단가를 동결하는 전략을 취하면서, 가격 하락의 혜택을 고객사(박스를 구매하는 기업)나 중소지함사가 아닌 자사 이익으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② 고지가 상승 시, 판지가를 인상

반대로 고지가가 상승하면 원지가는 오를 수밖에 없는데요, 이런 경우 대형 지함사들은 즉각적으로 판지가를 인상하여 원가 부담을 고객사나 중소 지함사에게 전가합니다. 이때 원지가 상승 폭 대비 판지가를 더 높게 조정하여 추가적인 마진을 확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③ 고지가 상승 시, 판지가를 동결

고지가 상승은 원지가 상승으로, 원지가 상승은 판지가 상승으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고지가가 상승하더라도 대형 지함사들은 판지가를 제한적으로 동결하여 중소 지함사들을 압박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중소 지함사들은 원재료 인상분을 박스 가격에 반영할 수 없게 되고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대형 지함사들의 이러한 전략은 시장에 전반적인 수요가 부족할 때 나타나며, 실제로 최근 국내 내수 시장의 소비 감소와 맞물려 영세지 함사들이 도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세 지함사들의 물량은 자연스럽게 대형 지함사들이 흡수하게 되고요.

3. 대형 지함사들의 시장 지배력 강화는 잘못된 것인가?

안타깝게도(?) 대형 지함사들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산업 구조 변화의 양상입니다. 규모의 경제를 활용하여 제조 원가를 절감하고, 우리는 더 나은 품질의 제품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과정이 지속, 심화되어 시장 경쟁이 과도하게 줄어들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시장에 긍정적이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시장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장을 읽을 수 있다면 전략적인 대응은 할 수 있습니다. 공급망 확대 및 축소, 공급자의 변경, 구매자에게 유리한 입찰 조건이나 계약 조건의 검토를 통해 여러분의 회사가 보다 안정적이고 경쟁력 있는 구매 전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필연적인 흐름 속에서 이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구매 담당자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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