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공공기관과 기업에 소속되어 근무를 해보았고, 공공기관과 기업별로 조직문화는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 중에 하나는, 텃세와 매너리즘이었습니다. 저는, 공공기관에서 근무시 짧게는 2년에 한 번씩 지역과 조직을 옮겨야 했는데, 보직이 변경되면서 어려웠던 점은, 새롭게 부여받은 내 업무에만 적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옮겨간 지역과 조직의 구성원들이 어떤 유형과 수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늘 도전을 해야 했음은 물론 일정 시간이 지나도 항상 심리적 안정감이 낮고, 붕 떠있는 느낌, 서먹함과 이방인이라는 느낌 또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어렵고 현실의 벽으로 다가왔던 것은 매너리즘과 광범위하게 구축되어 있는 그들만의 리그, 그리고 리그로 인해 굳어진 관계들이었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능력이 아닌, 리그와 관계들로 인해 기득권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 또한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기업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어떤 일을 추진하려고 했을 때 불가피하게 야근을 많이 해야 했습니다. 그때 어떤 직원에게 야근을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 직원이 저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원래 야근을 안합니다.” 그때의 신선한 충격은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직원이 잘못했다는 것도 아니고 야근을 권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현실적 관점에서 많이 신선했을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 그 직원과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니 그 직원도 저와 같이 야근을 하기도 하고 기존보다 조금 더 바쁜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직원이 저에게 찾아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팀장님과 같이 업무하면서 어디를 가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퇴사해서 자신 있게 개인 사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격려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군요.
어떤 직원의 경우에는 기안하는 방법을 좀 더 가르쳐 주고 싶기도 하였고 문서 내용에 부족한 부분이 잦았기에 결재선상에 있는 문서들을 제가 직접 수정 후 상부에 올리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어느 날 이 직원이 나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왜, 제가 작성한 문서를 수정하세요?” 나는 해당 직원에게 이유를 설명해 주었지만 기분이 나쁘다고 말을 하기에 더는 직접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내가 수정하지 않으면 상부의 반려가 잦아지거나 상부에서 이해를 못하겠다며 다시 물어보고 반려되는 비 소모성 행정 시간이 증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직원에게는 1주에서 2주 정도의 충분한 시간을 부여하고 제목과 개략적 방향을 설명하고 어떤 내용을 기획해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에 저를 찾아와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하게 하나하나 다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직원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할 거면, 제가 직접 하지 뭐하러 당신에게 이야기를 했을까요? 많은 고민을 통해 문제점을 분석해 보고 스스로 해결책을 제시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 직원이 저에게 한 답변은 “지난번처럼 또 수정 할까봐요”였습니다. 사람이 기계와 다른 것 중에 가장 큰 것 중에 하나는 뇌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비교해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뇌의 능력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것입니다. 창의성, 창조성, 독창성 등은 지속적인 생각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고민을 통해 다양한 문제점을 분석하고 다양한 해결책을 도출해본 경험이 적은 사람은 창의성, 창조성, 독창성 등과 거리가 먼 조직 생활을 하게 되고 성장해서도 하부 직원들에게 다양한 관점에서 가이드 또한 해주기 어렵습니다. 당연히 하급자로부터 존중 또한 받을 수 없을 것이고요.
이와 유사하게 사회 초년생부터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직급이 올라가도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할 수 없고 하부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길 가능성 또한 매우 높습니다. 이렇게 단순히 시간만 흐르면 나이를 먹게 되고 쌓이는 경력,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의 경력, 저는 이러한 경력을 ‘시간적 경력’이라고 부르는데 주변에도 이러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단순, 시간적 경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이들에게서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흔히들, 고인물이라고도 표현하긴 하는데 여러분은 시간이 지나면 고인물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나요?
저는 25살에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땀을 많이 내는 격렬한 운동을 좋아하기에 테니스만큼 좋은 운동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연세가 많은 간부들과 함께 치기 시작했습니다. 간부들 중에는 테니스 레슨을 통해 전문적으로 배워서 치는 사람도 있었고 전혀 배우지 않았지만 10∼20년 정도 테니스를 치다 보니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전문적인 레슨 경험 없이 10∼20년 정도 테니스를 해온 간부들과 테니스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정 기간 동안 나는 그들을 절대 이길 수가 없었고 제가 전문적으로 6개월 이상 레슨을 받은 이후에야 그들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구력’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목 부분과 헤드 부분이 얇아 힘과 기술로 치는 라켓이 아닌 큰 힘과 기술을 발휘하지 않고도 손목만으로도 공을 잘 넘길 수 있는 두꺼운 라켓을 사용하면서 손쉽게 공을 넘겼습니다. 물론 넘어오는 공의 스피드는 아주 세지 않았지만 정말 쉽게 공을 받아 넘겼고 제가 받기 힘들게 구석구석 공을 잘 보냈습니다. 저는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외부 강사에게 전문적으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이 지난 시점, 저는 그들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그들은 제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테니스 실력을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적 경력’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전문적 레슨 없이 단순 구력에 의해 습득한 테니스 실력으로는 초보자는 이길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 초보자가 실력을 쌓게 되면 이길 수 없습니다. 업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시간적 경력만’을 가지고 자만하거나 기득권처럼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시간적 경력’을 통해 쌓은 업무 수준은 짧은 기간에 누구나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시간적 경력’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여러분은 나중에, 다음 세대들에게 고인물, 더 나아가 꼰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조직을 수없이 옮겨 다니면서, 그것도 작은 조직에서 큰 조직이 아닌, 큰 조직에서 작은 조직으로 옮겨가면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던 것 중에 하나는 제가 인생을 잘못 살았나? 내가 잘못 배웠나? 입니다. 왜냐하면 ‘우물 안 개구리’ 현상을 자주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 것 중에 하나는 논리적 사고 Tool을 업무에 적용해 보는 과정에서 발생한 에피소드 입니다.
외부 컨설팅을 통해 임직원들은 5Why를 업무에 적용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한 부서의 5Why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어떤 이슈가 발생했는데, 회사 초창기부터 근무하면서 성장한 임원과 팀장이 5Why를 예로 이야기하며 하부 직원들에게 5Why를 적용해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이 작성해온 내용을 가지고 함께 모여 맞고 틀림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제가 볼 때는 직원이나 팀장이나 임원이나 5Why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논리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역량 또한 부족했습니다. 그런데도 팀장과 임원은 하부직원이 해온 것만 가지고 감놔라 배놔라 훈수를 두었고 틀린 방향으로 리드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논리적 사고 Tool을 업무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능력을 보유하려면 사회 초년생부터 논리적 사고 Tool을 활용한 많은 업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보아야만 합니다. 공통된 문제는 근무 년 수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이나 근무 년 수가 오래된 직원과 팀장이나 그보다 짧거나 더 오래된 임원이 5Why를 접해본 경험과 5Why를 이용해 직간접적 업무를 해본 경험이 거의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논리적 사고 Tool을 이해하고 이를 업무에 제대로 적용하는 능력은 단순히 나이가 많고 직장에 오래 근무했다고 해서 잘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모여서 상호 부딪쳐가며 노력하는 것은 긍정적이었으나 ‘배를 산으로 몰고 가는 현상’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타 부서의 부장이 협조 문서를 반려를 했습니다. 사유는 문서에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타 부서에 업무 협조 또는 확인을 목적으로 ‘통보합니다’, ‘통보하오니, 확인 바랍니다, 협조 바랍니다’라는 단어와 문장을 써서 문서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문서에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고 반려하는 것이었습니다. 당혹스러워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유선으로 물어 보았더니 반드시 존댓말을 써야 한다고 해서 존댓말을 문서에 써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여러 부서와 네트워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업무의 경우, Cause와 Effect 관계를 설명하면서 Effect에 영향을 주는 Cause를 발생시키지 않도록 주의하며 업무를 유지해 달라고 이야기를 하면 왜 비난하느냐! 공격하느냐!는 식의 답변을 자주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난이도가 높은 업무 분야들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중견, 중소기업에 CEO 직책으로 오는 경우, 해당 CEO분들에게서 여러 이야기들을 직간접적으로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당연하면서도 공통적인 부분은 중견, 중소기업이 본인이 몸담았던 대기업과 같거나 유사한 DNA, 프로세스, 시스템, 인재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CEO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파악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회사가 어쩔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나 목적이 아닌(영업 또는 회사 대 회사간에 전략적 관계 등) 프로세스나 시스템 개선을 목적으로 대기업 출신의 사람을 CEO로 영입하려고 한다면 CEO로 영입하기 보다는 COO로 영입해서 중견, 중소기업의 프로세스, 시스템, 운영 수준, 구성원들의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과 DNA 등을 충분히 파악하게 한 다음에 CEO를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 중견기업 간에 업종이 다르면 더욱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업종이 다른데 대기업에서 바로 CEO로 오는 경우 1년은 파악하다가 지나가고 1년은 뭘 좀 해보려고 했지만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지나가고 1년은 작년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이것도 저것도 생각대로 잘 안된다는 회의감에 1년을 보낼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업종이 다른 상황에서 CEO가 내부를 속속들이 잘 모른다면, 기존 구성원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기존 구성원들의 DNA 수준이 낮고 생각대로 따라와 주지 않는다면, 또 기존 구성원들이 CEO의 눈과 귀를 가리기 바쁘다면, CEO는 임기 중 많은 시간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경험을 자주 해야 하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 자주 처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돌을 옮겨야 하는데 돌이 너무 단단하게 박혀 있으면 돌을 심하게 흔들거나 주위 흙을 많이 퍼내야만 가능합니다. 여러분과 나, 우리 모두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단단하게 박힌 돌이 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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