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밀레니엄 시대 이후 최초로 범국민을 떨게 만들었던 전염병인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시기 나는 아무 준비도 안 한 ‘무늬만 취준생’ 이었다. 내 딴에 졸업하면 취업이 안된다는 소리를 듣고 졸업을 유해하며 한 학기 한과목만 수강하는 신세였지만, 그렇다고 남들처럼 ‘취업스터디’나 ‘인적성검사’의 준비는 하나도 안하고 있는 무책임하고 한심한 신세였었다.
당연히 이름만 알면 고개를 끄덕이는 대기업은 서류에서 광속탈락 하였으며, 그나마 자기소개서 준비와 및 토익공부를 늦게나마 시작한 탓에 몇몇 중소,중견 기업에서 제안이 왔지만, 면접 역시 준비가 안된 상황이기에 연이어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일전에 면접 본 한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다시 한번 면접을 볼 수 있겠냐고? 그리고 한 번 더 면접을 본 후 바로 다음날부터 사회 초년생 1일차를 맞이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1명을 뽑는 자리에 나와 같이 면접을 본 다른 인원이 이미 채용 되었는데, 그때 구매팀 소속 다른 한 분이 퇴사를 하면서 공석이 생겼고, 면접 자리에서 나를 좋게 보셨던 이사님께서 나에게 한 번 더 면접의 기회를 준 것이다.
내 기억엔 첫 면접 질문 중 “결품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면접자리의 다른 지원자들은 JIT(Just In Time), MRP(Material Requirements Planning)등 전문용어를 섞어가며 달변을 내놓았지만 아무 준비도 안되었던 나는 “상부에 빨리 보고하여 같이 고민하도록 하겠습니다.”이렇게 대답을 하였었다. 하지만 이 대답이 이사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공교롭게도 나 역시 지금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조언하는 문장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덜컥 사회 초년생이 되었으며, 전혀 관심도 없었던 구매직무에 입문하게 되었다.
떨어진 휴지 조각을 줍는 것도 배우는 거다.
대한민국에는 세 종류의 구매팀(혹은 구매인)이 존재한다.
원가분석을 하며 TCO에 대한 셈이 빠른 경영이나 산업공학 출신 인재
소속 회사 및 구매품목의 물성을 꿰차고 있어 협력업체를 주도할 수 있는 엔지니어링 출신 인재
오직 큰 목소리로 업체와의 기싸움에 승리하고 회사의 A to Z까지 구매할 수 있는 만물상 같은 인재
이렇게 세 분류가 존재한다. 예상하겠지만 저자가 초년시절에는 구매인이 세 번째 능력을 갖기를 원하는 중소기업들이 꽤 많았고 나 역시 그런 인재로 키워질 위기에 놓였다.
이런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로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존재의 대한 고민을 하던 중, 한 거래처 사장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내가 H회사 출신인데, 그곳 회장님께서 항상 하신 말씀이 있으셨어…… 창문을 닦다가 깨뜨려도 좋다, 안 닦는 것보다 낫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다짐을 하였다.
창문을 닦아보자, 그리고 창문을 닦는 법부터 배우자! 그때부터 나는 길에 떨어진 휴지를 줍는 것도 배우는 거라 생각했다. 그에 비해 양면복사, 스캐닝 같은 업무는 고급 업무였다. 추후 ERP를 배울때도 ERP의 역사부터 어떤 종류의 ERP가 현실적인지? 향후 도입하고 싶은 아이디어는 있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배우며, 나름대로 패기 있는 신입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구매라는 직무를 순도 높게 일하기 위해 나는 많은 대외 활동과 자격증 시험을 도전하며 나의 역량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소기업 구매 직무의 특성을 진단하며 내가 이 곳에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다.